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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모음

함흥차사 뜻과 유래 -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소심남일까

 

태종 이방원의 아버지이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태종 이방원의 아버지이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 TV드라마 '태종 이방원' (출처:네이버)

 

오늘은 사자성어 함흥차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위 사진 속 인물은 요즘 TV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의 아버지이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로 출연하는 탤런트 김영철씨 입니다. 뜬금없이 김영철씨 사진이 나와 놀라셨죠? 😀😀 바로 사자성어 함흥차사가 조선의 '1대 왕 태조 이성계'와 '3대 왕 태종 이방원' 사이에 있었던 일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함흥차사 한자와 한글

 

함흥차사 뜻

함흥차사는 한자어로 含(머금을 함), 興(일어날 흥), 差(어긋날 차), 使(부릴 사)로 쓰는 데, 한자어의 뜻은 단순히 '함흥으로 보낸 차사'를 말합니다. 차사는 조선시대에 왕명을 받아 파견되던 임시 관직이었는데,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달래려고 차사를 함흥으로 보내기만 하면 소식이 없어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함흥차사의 속 뜻은 '한 번 가면 아무런 소식이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태종이 보낸 함흥차사는 한 번 가면 소식이 없었을까요?

포스팅의 제목처럼 태조 이성계의 성격이 소심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 왜냐하면 사실 이성계는 자신의 아들 이방원에게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성계는 이방원이 보낸 차사를 잡아 가두거나 죽여서 아예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방원이 저지른 짓 때문인데, 바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왕자의 난에서 비롯 됩니다.

 

함흥차사 유래와 태종 이방원

제1차 왕자의 난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혁명에 성공하여 조선을 건국하는데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자식은 첫째 부인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개국공신들의 권유로 인해 둘째 부인의 차남인 방석을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이에 이방원은 크게 상심하여 불만을 품게 되었는데, 이방원은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음에도 이성계와 개국공신에게서 철저히 소외되었습니다. 그 당시 정도전이 중심이었던 개국공신 세력은 왕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처럼 관료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원했는데, 이방원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성계에게 방석을 추천했던 것입니다. 정도전의 개국공신 세력은 1398년에 실시했던 진법훈련에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과 사병들이 불참하자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혔고, 점점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던 이방원은 정도전과 일부 개국공신 세력들을 기습하여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자신을 궁지로 몰았던 세력을 제거하고 실질적인 권력을 잡게 된 이방원의 기습을 바로 '제1차 왕자의 난' 또는 '방원의 난'이라고 합니다. 이후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이방원의 둘째 형인 방과가 새로운 세자로 세워지는데, 그가 바로 조선의 제2대 왕 '정종'입니다. 하지만, 정종은 이방원의 눈치를 보며 왕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왕이었습니다.

 

제2차 왕자의 난

박포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제1차 왕자의 난에서도 큰 공을 세웠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자, 이방원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이방원과 갈등을 빚던 이방원의 친형제 방간에게 접근하여 이방원을 공격하게 하는데, 이것을 바로 '제2차 왕자의 난' 또는 '방간의 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방간과 박포 세력을 물리친 이방원은 더욱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방원은 결국 2년후 세제로 책봉되어 정종에게서 왕위를 물려 받아 조선 제3대 왕 태종이 됩니다. 한편 이렇게 1,2차 왕자의 난을 겪는 동안 태조 이성계는 형제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방원에 실망하여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립니다. 형인 정종에게서 왕위를 물려 받은 이방원은 아버지에게 사과를 드리고 자신이 왕이 된 정당성도 인정받고 싶어서 아버지가 있는 함흥으로 계속 차사를 보내어 다시 성으로 모셔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원이 함흥으로 보낸 차사는 한번 가면 깜깜 무소식에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아버지인 이성계가 그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잡아 가둬버렸기 때문입니다.

 

함흥차사의 유래는 이와 같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의 유래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성계가 아들인 이방원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도저히 이방원과는 화해를 못했는데, 과연 이성계의 그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요?

다행히도 나중에 박순이란 개국공신 때문에 이성계도 고집을 꺾고 다시 한양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함흥차사로 임명되어 이성계를 찾아간 '함흥차사 박순 일화'는 따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왕자의 난을 보면서 느낀 것은 조선시대는 비교적 최근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일들이 무척 많은데요. 사실은 굉장히 슬픈 역사적 사실이었음에 착잡해집니다.

오늘은 사자성어 함흥차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